향기가있는시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 이 규 리

꽃담이 2019. 7. 17. 20:19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 이 규 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다가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인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