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크림트(The kiss serpents1) 1862~1918
Gustav Klimt 1862-1918
구스타프 크림트는 1862년 7월 14일,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나서 1918년 사망. 1
905년 크림트의 탈퇴로 처음과 같은 생명력은 상실되었으나.
크림트의 특이한 색채, 공간구성은
크림트 예술의 큰 특징은세밀하고 아름다운 장식성과 여성의 이미지 표출이며.
크림트 작품의 특징인 수직으로 중심을 가르는 인물,
골격이 튀어나오는 마른 몸매와 비틀린 자세...
장식적인 배경을 기본으로 하고있다.
클림트의 작품에는 유난히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클림트에 의해 표현된 여성상은 ‘요부'인 동시에 ‘어머니'라는 대조적인 상징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는 클림트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고착 현상과 여성을 통한 시대정신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가던 분위기에서 그는 여성들이 발휘하게 될 엄청난 힘을 미리 예견하면서,
작품 속에서 남성의 파경을 그렸던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는 외설과 퇴폐적인 요소로 당대의 전통 화단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빈 대학의 천장화가 많은 논란이 되었지만,
그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그려 나갔다.
이후
당시 도형미술을 비롯한 의복,
건축 등 모든 분야를 휩쓸며 유행했던 정사각형은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클림트 역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작품에 사용한 중요한 화면상의 규칙이 바로 정사각형이었다.
물뱀
클림트는 정사각형 속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넣는 일 뿐만 아니라,
정사각형 자체의 이미지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시도하기도 했다.
황금색의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구성.
클림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같은 장식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클림트가 미술교육을 받았던 응용미술학교의 자연스러운 영향도 있었지만,
이는 당시의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아르누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비온뒤의 풍경
클림트가 그린 풍경화의
대부분은 묘하게도 캔버스 크기가 110 × 110cm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회화를 자랑하던 빈분리파였던 그는 여체의 아름다운 몸과 사랑을 담은 그림을 주로 그렸으며
그 그림들의 캔버스의 크기는 다양하다.
고요한 호수
아터 호숫가의 시골집(여름풍경)
나무 아래 장미가 있는 풍경, 1905년, 캔버스에 유채
Emilie Fl?ge, 1902, oil on canvas, Historisches Museum der Stadt Wien, Vienna
'크림트'와 '에밀리 플뢰게'[Emilie Fl?ge,]
- 14명이 넘는 사생아가 있었던 크림트의 생애에는 중요한 두명의 여자가 있었다.
- 자신의 자식을 둘이나 낳아준 노동자 출신의 '침머만'과
- 남동생 '에른스트 클림트'의 처형인 사업가 '에밀리'다.
- 58세로 문란했던 삶을 마감할 때 까지 '침머만'과는 밤 이외의 다른 관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 '침머만'과 그의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희망1'[Hope I 1903]이라는 작품에 담기도 하였다.
- 한편 '침머만'과는 달리 동생이 일찍 죽은 후
- 자연히 그의 딸 '헬레네'의 후견인이 되자동생의 처형' 에밀리'와 가까이 되면서
-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 그렇지만 결코 정신적인 관계 이상의 선은 넘지 않았다.
- 그러면서도 '클림트'는 이 두 여성 어느쪽하고도 결혼은 하지 않았다.
- 하지만 1918년 심장발작으로 죽음을 눈 앞에 둔 클림트가 마지막으로 애타게 찾은 여인은
- '에밀리 플뢰게'였고
- 그녀 역시 '클림트' 사후 다른 남자와는 결코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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