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신정일 선생님께서

반계사당, 유희경,허균,부안기생 매창

과 얽힌 얘기들에 대해서 가르켜 주셨다 

 

 

 

반계선생

유적지는 전북 부안군 부안면 우동리에 자리한

조선 효종과 현종때 실학자로 활동한 유형원 ( 1622-1673 ) 이

일생동안 학문을 탐구하던 곳이다

그는 뛰어난 학문으로 여러 차례 벼슬에 추천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삶을 넉넉하게 하는데 학문의 목적을 둔 사람이다

 

 

 

유희경 [劉希慶, 1545 ~ 1636]

아버지는 종7품인 계공랑(啓功郎)업동(業仝)이고 어머니는 허씨 이다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학자.

예문에 밝았고 특히 상례의 1인자로 국상 절차도 그에게 문의하였다.

광해군 때에 모후(母后)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그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 협박했으나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그 절의를 높이 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려주었고,

80세 때 가의대부(嘉義大夫)를 제수 받았다.

 

 

 

허균(許筠, 1569~1618)은

당대 명가의 후예로,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굴곡있는 삶을 살았던 정치인이자, 자기 꿈의 실현을 바라던 호민을 그리워하던 사상가였다.

허균은 분명 시대의 이단아였다.

사람들은 그를 '풍운아'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서얼 출신이었고,

그의 사상은 제도화된 낡은 유가의 교리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당시

정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당대의 사회모순을 비판하는 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

그리고 왕의 폭정에 항거하는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참형 당했다.

허균

그는 전북 부안군 부안면 우동리를 좋아했다

이곳에 살면서 뼈를 묻고 싶다고 할만큼 이곳을 좋아 했다

 

 

 

梅窓桂梁 [매창계량]

계  량 (1513-1550) : 성은 李,   본명은 향금,   호는 메창, 또는 계생,

중종때의 부안기녀,  

노래와 거문고에 능하고  한시를 잘 하였다

그녀는 1513년 (선조 6) 이 곳 扶安에서

이양종(李陽從)의 庶女로 태어나 1550년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날리는 꽃 공연히 한만 쌓이고
시든 향초 다만 마음 상하네.
봉래도라 구름은 자취도 없고
푸른 바다 달빛은 하마 잠겼네.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이 시는 기생 계량이 38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그녀의 연인이자,

친구처럼 지내던 허균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 중 한 편이다.

 

허균은 계량을 가르켜 이렇게 말한다.

 "성품이 고결하고 굳세어 음란함을 즐기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아껴 막역의 사귐을 나누었다.

담소하며 가까이 지낸 곳에서도 난잡함에 미치지는 않았기에 오래도록 그 만남이 시들지 않았다"

허균과 계량은 가까이 지내면서도 몸을 나누지 않았다.

계량은 당시 허균의 친구의 연인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몸을 나누지 않고 마음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1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계량은 나이 서른이 되어 퇴기가 되어 관가에서 물러난다.

그 후 계량이 죽을 때까지 허균과 계량의 우정은 이어진다.

 

 

 

 

    

 

 

 

 

                梨花雨  흣뿌릴제

 

                                   / 부안기생:매창(계량)

 

 

               梨花雨  흣뿌릴제 울며잡고 離別 한님

 

               秋風落葉에 저도날 생각난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배꽃이 흣뿌릴때  울며잡고 이별한님

 

                추풍에  잎이질때  님도나를 생 각할까

 

                먼길에 외로운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감   상

                     시름없이 떨어지는 낙화를 바라보며,    교교한 달빛아래 구슬프

                     게 울려오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듣으면서 하얗게 피어있는

                     이화를 만지며  弱水三千里에 멀리 가리인 임을 그리면서   輾輾

                     不寐 잠못드는 애끓는 그 심정을 읊어낸 것이  우리 고시조에 많

                     다.   이 시조도 바로 이런 유형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봄의 이별의 광경이 주는 구슬픔과,    가을밤 낙엽소리를 듣으며

                     잠 못 들어 하는 모습에서,    한때도 잊지 못하고 임을 그리워 하

                     며 살아 온 슬픔의 한 여인을 그려볼 수 있다.   이제 소식도 만날

                     길도 없으니,    꿈속에 나타나는 임을 보고   님께서도 나를 생각

                     하고 있을것으로 믿는 가냘픈 기대가 애련하기만 하다.

 

 

 

 

                     배   경

                     이 시조는 당대의 시인이며,    賢士였던 村隱 유희경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정이 깊이 들었던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후 소식

                     이 없으므로,    이 시조를 짖고 수절하다가 서른여덟에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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