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리즘'을 어찌할 것인가?
포퓰리즘’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계기로 그야말로 난무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부터가 뜻깊은 광복절 행사에서 포퓰리즘을 언급했다. 복지 포퓰리즘이 외국에서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했다며 국민에게 배격하라고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2주일이 못 되어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했을 때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소리가 또 요란했다. 주인공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인데 8월27일치 <한겨레>에 따르면 “전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던 오 시장을 역으로 포퓰리스트라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지위 높은 정치가 세 분이 ‘포퓰리즘’을 소리 높여 비난하지만 나는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우선은 영어 단어여서 어렵고, 그것이 어떤 나라 국가부도 사태의 주범인지 헷갈리며, 게다가 홍준표 대표는 포퓰리즘 반대자를 포퓰리스트라고 비난했다니 도대체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포퓰리즘’이란 엘리트에 대항하여 민중의 욕구를 대변하려는 정치이념과 활동을 뜻하며 민중에게 호소하는 정치론을 가리킨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민중주의가 되겠는데 ‘포퓰리즘’ 비판자가 문제 삼는 것은 민중의 욕구와 판단력의 수준이다.
“돼지 같은 대중.” 민중을 폄하하고 불신하는 견해의 긴 계보에서 근대에 대표적 예가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의 이 말이다. 그는 18세기 당시 영국의 정치체제를 프랑스혁명의 영향에서 지키고자 대중의 저급한 속성을 근거로 의회개혁론에 맞섰다. 19세기에도 민중 폄하와 선거권 확대 반대는 계속되었다. 19세기 영국 정치를 찬양한 <영국헌정>의 저자 월터 배젓은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 자유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민중 평가도 가혹했다. 배젓은 민중을 “가난”과 “무지”라는 두 단어로 규정하며 선거권 확대를 반대했고 밀은 자신이 민주주의에서 멀어진 것은 대중의 “무지와 특히 이기심과 짐승스러움”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성가 높은 <헌법학 입문>을 저술한 앨버트 벤 다이시는 1915년에 이르러서도 여성투표권을 “사물의 본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중요한 사실은 강력하고 끈질긴 민중 폄하와 불신에도 성인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가 현대 민주국가의 기본제도로서 확립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단 보통선거제가 채택되었다면 국정의 운영을 대중의 의사에 따르기로 이미 합의했다는 표지이다. 보통선거제도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도 고위 정치인은 그 지위를 모두 대중의 인기에 힘입은 것이지 무슨 다른 요인 덕분일 수가 없다. 민주국가의 정치인이 대중을 폄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지자를 헐뜯는 참 고약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19세기 영국의 정치담론처럼 대중을 무시해서는 안 될 이유가 또 있다. 영국 의원들은 의회 설립 때부터 몇백년을 봉급을 안 받고 복무했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세금폭탄”을 운운하며 뻔뻔스럽게 세금에 적대적인 부자와 달리 성실히 납세하는 대중에게서 적지 않은 봉급을 받기 때문이다.
이제 ‘포퓰리즘’을 어찌할지 답이 보인다. 우선 ‘포퓰리즘’이란 영어 단어를 퇴출시켜야겠다. 우리말 대신 헷갈리는 영어 단어가 난무하는 정치문화는 결코 건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포퓰리즘’의 뜻을 살펴보면 민주국가 정치인은 그를 매도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도 어떤 정치인이 ‘포퓰리즘’을 비난한다면 그에게는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표를 주고 세금 내서 돈까지 준 그에게 멸시당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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