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로운 체제가 다가온다 / 안병진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낡은 이분법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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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잊은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주마등처럼 스쳐간 1980년대 운동권 문건의 제목이다. 다만 그 당시 문건이 기대하지 않은 성격의 혁명일 뿐이다. 바로 선거를 통한 새로운 자유주의 혁명 말이다.
지금 화제가 되는 모든 이슈들을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강남좌파, 야권통합 운동, 진보정당의 다양한 분화, 한진중공업 논쟁, 이명박의 공생론, ‘발끈혜’(조국 교수의 유머) 현상 등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 다양한 균열의 신호에 불과하다. 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여러 번 자신의 예측과 다른 현실에 당혹해할 것이다.
이 모든 퍼즐 조각들은 ‘새로운 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이란 큰 그림으로 점차 뚜렷한 형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치·문화에서 자유로운 권리와 자의적 지배에 대한 견제와 균형으로 압축되는 민주공화국의 자유주의를 만개하지 못했다. 천민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혼합된 기괴한 괴물에 숨구멍이 질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혁명이 지층 밑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자 각 이념 세력은 당황하거나 혼란 속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난 안철수 신드롬이 있기 전 이 지면에 ‘다가오는 자유주의의 시대’라는 예측의 칼럼을 썼다가 다채롭게 욕을 먹었다. 예를 들어 강준만 교수는 신간에서 강남좌파 현상을 다가오는 자유주의 시대의 한 징후로 연결한 나의 진단을 냉소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안철수를 강남좌파로 낙인찍고자 한 수구들의 시대착오적 소동처럼, 이 현상의 심층에는 기존 여야와 다른 매력적인 자유주의 주체의 등장에 대한 존재적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조국 등 현재 주목받는 이들은 각각 이념적 스펙트럼에서는 다양하지만 정부 대 시장, 평등 대 자유, 권리 대 책임, 고용안정 대 유연화, 세계시민주의 대 애국 등 기존 좌우의 낡은 이분법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말이 아니라 전문 영역에 단단히 뿌리내린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20대들은 촛불시위 등에서 드러냈듯이 새로운 자유주의 감수성의 세대로서 2008년 미국처럼 2012년 한국 소셜네트워크 혁명의 주력부대가 될 것이다.
야권통합 운동과 진보정당의 분화는 얼핏 보면 안철수나 강남좌파 논쟁과 무관해 보이지만 궁극적 본질은 다가오는 새로운 자유주의 시대에의 적응이나 혼란, 혹은 거부이다. 자유주의는 곧 보수가 아니며 진보에게 모욕적인 낙인도 아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운동의 한 흐름처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적 감수성을 가지는 자유주의는 얼마든지 급진적이다. 생각이 있는 진보라면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흔들림과 새로운 자유주의의 도래가 동시적으로 다가오는 미묘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최대한 더 진보적으로 이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는 어떤 징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건 아마 시한부 인생인 기존 경제 패러다임의 본격적 삐걱거림일 것이다. 그리고 윤여준 전 장관 같은 탁월한 재사만이 아니라 더 많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이 기존 낡은 체제로부터 이탈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이명박계의 불면의 밤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더 빈번한 실수로 이어질 것이다.
이 새로운 차원의 이행의 기간과 그 결말이 무척 궁금하다. 제대로 이행이 관리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할 수 있다. 단순히 정책 설계 수준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체제에 대한 논쟁을 시작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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