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다 1

 



        / 박이화

 


옛사랑은
종이에 맹세를 적었다
더 옛사랑은
나무 기둥에 새겼다
희고 단단한 나무에 그 마음 새겨 두면
죽어서도 나이테처럼 한 몸이 되리라 생각했을까?
그런데 그보다 더 옛사람은
조개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
무덤까지 가지고 간 이도 있다
살도 썩고 머리카락도 썩고 마침내 마지막 뼛조각마저
한 줌 흙으로 돌아간 후에야
비로소 깍지 풀 듯 스르르 사그라질 그 마음
그래서 백 년은 환생에 걸리는 시간
나비를 잊고 있을 때만 나비가 내 어깨에 앉듯
당신과 내가 이 뼛속 사무치는 봄날을 잊은 채
붉은 배롱꽃으로 하품하며
다시 피고 질 후생까지의
그 백년의,



one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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