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김동주

거울이 나를 본다
거울의 손이 내 눈동자로 파고든다
그는 모세혈관에 숨어있는 내 생각을 꺼내먹는다
구멍난 동공에
붉은 전구 빛이 흘러오고
나의 몸은 책장속 언어로 흔들린다
내가 모르던 기억의 글자들이 일어나 거울 속으로 걸어간다
혈관을 떠돌던 유전들이 유성처럼 거울로 빨려든다
그는 점점 부풀어가고
나는 점점 쪼그라든다

나는 나를 나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는 나를 다른 나의 공간으로 옮겨야 하는
이상한 거울의 세계에 갇혀 있다
거울이 나를 먹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항하지 못하는
아니, 스스로 먹히고 싶은
아니, 영혼이 있다는 게 두려운
내가 거울에 씹히며
거울안에 저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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