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연애
/고영
아내가 시장에 간 사이 애인과 연애를 한다
누가 볼까 쉬쉬 숨겨두었던 애인과 연애를 한다
백주에 낯뜨거운 연애를 한다
내 양 머리채를 잡고 교태를 부리는 애인은
물 오른 가물치 같다 잔소리도 없다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마음, 천 개의 날개를 가진 애인과 연애를 한다
그러나 교태를 다 받아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아내의 장바구니는 너무 작고 가볍다
아내의 발은 너무 빠르다
천 개의 날개를 다 펴보기도 전에 나는 문밖부터 살핀다
애인에게 모자를 씌워 서둘러 서랍 속으로 돌려보내고
아내와 낯간지러운 연애를 한다
지구의 중심이 기우뚱 무너진다 하늘이 노랗다
고영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 《천년의 시작 》에서
고영 시인은 아내가 시장에 간 사이를 틈타 시를 쓰며
아내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시를 쓰는 일을 접어 놓고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시간을
혼자 사랑하는 「씁쓸한 연애 」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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