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멋지다
열기구 투어는 운이 없으면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단다.
미세한 바람과 풍향에도 영향을 받아 어떤 사람은 열기구 타기 위해 다시 찾기도 한다지?
여하튼 설레이는 가슴으로 열기구탑승장 도착이요
마지막으로 개구장이스머프의 배경이 된 파샤바 계곡의 버섯바위를 둘러보았다.
해질녘이라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한낮의 태양보다는 늦은 오후의 사위어가는 햇살속에 찾아야 하는 곳이라 하더니 ..
그래, 그래서 더 신비로웠었나?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 블루모스크(Blue Mosque )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 아래 건축가 시잔의 제자인 메흐메트 아아(Mehmet Ağa)가 1609년 착공을 시작해 1616년 완공했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원에는 4개의 미나레가 있지만, 블루 모스크는 6개의 미나레를 가지고 있다.
블루모스크는 이번 순례에 방문하지 않은 곳이다.
아야소피아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이다.
4차 십자군 원정때 기독교 장군의 무덤이라고했는데...
십자군원정때 기독교인이었지만 성당 등 유물을 너무나 많이 훼손했다한다.
오히려 모스크로 사용한 이슬람교 지배하에서 더 잘 보존했다니...참
드디어 도착한 아야소피아
세계에서 가장 큰 비잔틴 양식의 성당...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었으나 터키 지배하에서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
아야소피아는 성스러운 예지란 뜻으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325년 세운 구당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재건되었다한다.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서 발견되는 성곽, 말마르해쪽을 달리면서 찰칵, 1500년된 성벽이라고 한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ㅎ
도시성곽은 내외성을 포함하여 전체 약 21키로에 달한단다.
성곽 일부가 개인주택의 받침돌 역할을 하기도 하고 ... 우리 서울 성곽길에도 일부 그런 건물이 있긴하지.
로마시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풀로 천도하여 약 1100년 이상의 영화를 누렸다니 이런 유구한 역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소금호수로 터어키 국민이 소비하는 소금량의 65%를 생산한단다.
우리처럼 힘든 과정을 그치는게 아니라 더운 여름 한낮에 그냥 대형 장비를 이용해 채취하기만 하면 된다니..풍부한 자연 자원이 부러워졌다.
터어키는 국민 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낮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도는 우리나라보다 높다는 말을 가이드가 들려주었다.
자원이 풍부하고 물가가 낮아 우리보다 훨씬 생활비가 적게 들어간다고 했다.
기원전2세기에 세운 장식용의 대리석 아치로 로마시대의 영광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다.
130년에 로마황제 히드리아누스가 이 도시를 통치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한다.
안딸랴의 구시가지 관광을 위해 통과하는 문이다.
어두운 곳에서 구시가지 구경을 하곤 동틀무렵 갈리치 선착장으로 갔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드디어 지중해를 보는구나!
사도바울이 안디옥으로 전도여행을 떠난 곳이라고했다.
구시가지의 성곽은 로마시대 것이라하니 과히 그 역사를 헤아리기가 ..
지중해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올림푸스산으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타고서 정상에 올랐다. 역광이라 그렇지 날씨 엄청 좋았다.
저기 지중해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다.
산상카페의 옥상에 오르니 각국 도시의 거리와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그전엔 서울이 없었다는데..서울 8148km다. 멀리도 날아왔구나
운무가 끼면 바다도 산도 안보인다는데 가이드가 또 날씨덕 얘기를 했다.
점심으로 먹은 닭고기 케밥
터어키 음식은 굳이 조리를 많이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가 많았다. 야채 셀러드도 저기에 올리브를 뿌려먹거나 그냥 먹거나.
음식이 타도 그냥 그대로 올린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않아 케밥도 닭고기케밥이나 소고기를 쓰고 돼지고기를 사려면 불가리아에 가서 몇 키로씩을 사온단다.
점심을 먹고 파묵칼레로 이동하는 중 차창밖으로 한방 쏘았다.
이 지역은 올리브 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차창밖에 보이는 나무는 거의 올리브라했다.
재배하지 않고 야생의 올리브가 훨씬 고급품으로 친다하니 우리랑 다르지 않은것같다.
일차에도 별투어는 시작되었다.
이 날은 쇼핑을 위해 일찍부터 서두른 감도 있었다.
맨처음 들린곳이 양가죽 제품을 파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선남선녀들이 나와 얇은 소재의 양가죽 쟈켓의 패션쇼를 먼저하고 쇼핑에 들어갔다.
쭈쭈빵빵인 서양 미인들이 펼치는 패션쇼라 뭘 걸쳐도 척척 잘 소화를 해서 눈이 호사를 누렸다.
그렇게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양가죽 제품은 처음이라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하였다.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나는 출국하기 직전에 직원들이 자주 찾는 옷가게에서 구매한 양가죽 코트가 있어 아이쇼핑만 즐겼다.
쇼핑후 에페소로 이동하였다.
에페소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어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요충지로 번성하였으나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정복된 뒤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출처:네이버지식백과)
에페소는 로마시대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로 3대 도시는 로마, 엘렉산드리아(이집트), 에페소(터키) 였다한다.
에페소는 사도바울이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 유명하며
사도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 에페소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바로 "에베소서"라고 한다.
또한 사도요한이 성모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고 있다는 에페소로 모시고 왔고
에페소 성도들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하며
이후 이 곳은 카톨릭교회의 성지가 되었다한다.
'Odeon'약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붕이 있었다고 하며 소규모의 공연이나 회의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스클리피온'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뱀
현재 세계보건기구나 서양의 의학계에서 사용하는 휘장에 뱀이 있는것은 여기서 기원하며
우리나라는 헤르메스에 지팡이에서 따와 뱀이 두마리라고 한다.
쿠라테스 거리에 있는 '헤라클라스 문' 당초에는 2층으로 되어있었고 마차의 통행을 막기 위해 좁게 만들었다고 한다.
'히드리아누스 신전' 아, 스맛폰의 비애 광각 기능이 없어 이렇게 윗부분만.
기둥은 코린트식이고 정교한 아치의 조각이 아름답고 관련된 신화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난다..휴~
공중화장실의 좌변기. 아래로 물이 흘러가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하인이 미리와서 앉아 데워놓으면 상전이 와서 사용했다한다.
시작하는 부분이 오염도가 낮아 사용료가 비쌌다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에페소의 상징과도 같은 '셀수스도서관'
2세기초 소아시아의 총독이었던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율리우스 아퀼라가 지하에 셀수스의 납골당을 만들고 그 위에 도서관을 지었다고 한다.
우측에 있는 문은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으로 노예 신분이었던 두사람이 자유의 몸으로 회복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해 바친 문이라고 한다.
도서관 뒤쪽의 벽체다
도서관을 나와 원형대극장으로 가는 길이다
가까이서 본 원형극장. 아래쪽에 있는 관광객들 중국인들이다.
최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하다.
가까이서 본 원형극장. 아래쪽에 있는 관광객들 중국인들이다.
최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하다.
기원전 3세기경인 헬레니즘 시대에 지어진 것을 1세기 때인 로마시대에 크게 증축하여 큰 집회와 예술 공연 뿐 아니라 검투사와 맹수들의 싸움도 벌어졌다한다.
원형극장 관람을 마치고 나와 와인의 마을 쉬린재로 이동하였다.
쉬린재는 그리스인들의 후예가 거주하는 그리스인 마을이다.
쉬린재 마을내 가까이서 본 올리브의 완숙 열매.
에페소 관광을 마치고 우린 아이발릭으로 이동하였다.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이어진 노을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까페에서 맥주 한잔씩을 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항구의 식당에서 먹은 고등어케밥.
저렇게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욕을 돋우고 옆에 닭고기스프도 시원하니 맛있었고 빵도 맛있어서 베리굿 했답니다.
저기 김가루는 국산임.
식당 인터넷 주소가 겔리볼루...인데 1차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 겔리볼루전투라고한다.
양쪽 군인90만이 참전하였고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했다고 한다.
1차대전때의 참호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1차 대전후 패전국으로 맺은 조약이 세브르조약으로 국토의 상당 부분을 여러나라에 떼어주는 굴욕적인 조약으로
터어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아타투르트(케말파샤) 초대 대통령이 국토를 원상 회복했다한다.
그래서 터어키의 국부로 불리며 추앙받고 있고 이스탄불시내 곳곳에 그 분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었다.
이스탄불 시내에 가까워졌다.
우리나라에는 교회십자가가 수시로 눈에 띄는데 터어키에선 모스크가 그 정도로 눈에 띄었다.
모스크의 뾰죽한 탑을 미나렛이라하는데 미나렛이 하나면 국가에서 지은 것이고 두개는 유지나 명망있는 개인이 지은 것이라한다.
에페소 맨앞에 있는 양머리 모양이 이오니아양식이라고 한다.
'Odeon'약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붕이 있었다고 하며 소규모의 공연이나 회의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고급주택가였다고 한다.
바닥을 보면 고급 양탄자 문양을 하고 있다.
파묵칼레에 도착했네요~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뜻이라한다.파묵칼레의 물은 정신질환과 혈관질환, 심장질환, 류마티스에 좋다고 한다.
파묵칼레로 이동 도중 가이드가 해준 여행객과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에피소드를 소개한 가이드의 결론은 다리 떨릴때가 아니라 가슴 떨릴때 여행하라는 것이었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네로황제,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가 다녀간 곳이기도 하고 14,000년전부터 형성되었다한다.
멀리서보면 하얀산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중국 황룡에서처럼 옥색빛 물이 한가득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빈 다랑이만..ㅠㅠ
조심조심 아주 미끄러워요. 잘못 미끄러지면 저기 쓸려서 멀리까지 떠내려간단다.
우린 여기앉아서 족욕, 물이 약간 뜨뜻한 정도였음.
파묵칼레에도 이런 성곽터가 남아있다.
사진에서 보듯 파묵칼레에서 거의 해질녘이 되었다.
멀지않은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저녁먹고 잠깐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 좀 떨다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비교적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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