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익고 나서 / 김낙필
우리는 늙습니다
목주름도 생기고
손 등에도
눈가에도
뱃 살에도 세월의 주름이 생깁니다
세월은 문신입니다
걸음마하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무심천 따라 세월이 살 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압화로 生이 새겨져 남았습니다
늙었습니다
전철 노약자석에 앉을 만큼 늙어 버렸습니다
누구에 탓은 아닙니다
세월 가면 다 그렇지요
당연한 순리 아니겠어요
한 점의 벽화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뱃사공으로
환쟁이로
글쟁이로
주태배기로
아니면 아무개로 라도
늙어서 좋은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세월 따라
조용히 흘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늙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라 누군가는 노래 했습니다만
다 익어 버리면 물러 터지지요
물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죽어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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