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 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시집『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2011년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동 대학원 졸업.
1984년<분단시대>로 등단.
시집<두미마을에서><접시꽃 당신><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당신은 누구십니까> 등
...............................................................................................
Addio Del Passato / Filippa Giordano
' 향기가있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 도종환 / Emma Shapplin / Spente Le Stelle (0) | 2011.08.31 |
---|---|
가을 아욱국 - 김윤이 / Ralf Eugen Barten bach - Loving Callo (0) | 2011.08.30 |
가장사나운짐승ㅡ구상 / BZN (0) | 2011.08.27 |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ㅡ 용혜원 / Nilufer - Cok Uzaklarda (0) | 2011.08.27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 서정주 / 늪 - 조관우 (0) | 2011.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