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더 잘 서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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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득문득 서러워지곤 했다. 잦은 강연에다 이런저런 인터뷰, 어떤 행사의 부분을 담당하느라 쫓기듯 지내는 것도 버겁고, 아무리 경제적인 반경을 고려해서 일정을 잡아도 녹초가 된 몸이 회복 안 되니 힘겹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워서.
지난 일요일에 지방에서 일정 하나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있다. 별안간 뒤통수가 뻐근해지면서 눈이 쏟아질 듯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누적된 피로 탓이지만 다음 일정이 남았으니 벌써 지치면 안 되는 거였다. 사흘 전부터 이어진 아홉 번째 일정. 내일은 여섯 시간 강의까지 있다.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교회에 안 다니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묵묵부답. 다른 사람에게 보내도 마찬가지. 갑자기 세상이 텅 빈 듯 외로워지며 눈물이 솟았다. 그래, 오늘은 일요일이지. 한집에 사는 남편도 내가 하는 일은 신선놀음인 줄 아는걸. 긴장한 채 두세 시간 떠들고 나면 구토 증세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살쯤으로 여기는걸. 울면 안 된다. 나이 오십이 돼 가는, 잘나간다고 소문난 작가 체면이 있지. 콤팩트에 비친 충혈된 눈을 들여다보며 분첩으로 슬픔을 꾹꾹 눌러 감추고, 행사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에 묵묵히 사인을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며 강연을 마쳤다.
나 많이 힘들어. 쉬고 싶어. 이즈음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가 고개를 끄덕여줄까. 넌 그래도 작가잖아. 책도 영화도 기록 세웠다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그럴 줄 짐작하기에 나는 잠자코 견디기로 했던 것 같다. 사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니까. 평생 글 쓰며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어떤 강연이나 인터뷰는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왜 이렇게 홀로 버려진 듯 서러울 때가 많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한지 모를 일이다. 광화문 네거리의 한 무리 사람들 틈에 끼어서 찬바람 맞고 서 있는 것처럼.
한발 한발 언덕을 오르며, 나는 이렇게 혼자서 간다, 내 발바닥이 디딘 여기가 내 현실이다, 마음 다독이며 올라온 사람을 요란하게 맞아준 청설모. 그 재빠른 녀석을 바라보는데 늘씬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들의 푸르른 머리채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어우러져 부드러운 곡선으로 하늘을 모자이크하고 있는 풍경. 숲만큼 질서를 잘 유지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갑자기 메타세쿼이아들이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마치 스스로 용틀임하는 것처럼 보인 게 착각인지 몰라도 나는 죽은 이파리와 잔가지가 떨어져 내리는 걸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청진기를 나무에 대고 귀를 기울이면 물관이 꿀꺽 물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올랐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나무도 몸을 흔드는구나. 바람을 빌려 스스로 몸을 흔들고 있어. 죽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더 잘 서 있으려고.
내가 왜 혼자서라도 산에 오르고 싶어지는지 오늘에야 깨닫는다.
내 한 걸음의 소중함을 알려준 산이 이제는 혼자서라도 스스로를 추스를 줄 알아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외로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걸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출처
:전주포토피플
원문보기▶ 글쓴이 :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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