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이 떠날 시간
바로 지금이 떠날 시간
살아가다가 보면 그럴 때가 있다.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그래서 길 가다가 우두커니 서서 망설이고 있는,
그런 시간이 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캄캄한 어둠,
안개 자욱한 길 위에서,
어디로 가지? 중얼거리며 꼼짝도 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간,
그때가 이른 시간,
“늦은 시간, 늦었어, 길 옆 신호등을 감싸 안고 부화를 기다리던 미루나무 잎 새들, 다 떨어져 혈빈하고..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푸른 잎새 하나 물고 나오지 못하네. 어쩌면 좋아, 어쩜! 지나간 날들 돌팔매처럼 날아오고 새들이 먹다 남긴 옥수수 대궁 말라가네. 이제 발자국은 헤매려 하지 않네. 철없는 걸음 아무 길도 받아주지 않네.”
이성복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중 <밤>이라는 시의 몇 소절 같은
그 시간과는 다른 시간,
길은 그때 새롭게 열리며 나그네에게 ‘어서 가라’고 속삭인다.
나무들이 일제히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희미하게 그 길이 윤곽을 드러낼 때,
그때가 천천히 발길을 옮겨야 할 시간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 이미 정해진 운명의 길이니까?
그대도 나도 결국 아무 가진 것 없이 왔다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구름 같은 나그네의 삶이 아닌가?
한발 한 발 내 딛는 발걸음 마다 쌓이고 쌓인 무수한 추억들이
외롭게 소리도 없이 노래 부르는 시간,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이 새벽이 오고
그 새벽에는 그렇게 수없이 고뇌했던 시간들을
잠깐이나마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그런 시간이,,,
신묘년 시월 초여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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